【 미륵불 시대의 금강경金剛經 】 2017. 10. 14. (토)
개경게開經偈!
금강경을 열기 전에 스스로 다짐하는 마음의 각오입니다.
여기서 게偈라는 것은 <두 마디가 한 문장이 되게 지은 글>이라는 뜻입니다.
無上甚深微妙法 무상심심미묘법
위없이 높고 깊은 미묘한 법은
여기서 법은, 우주의 원칙이나 작용 혹은 부처의 가르침이나 계율을 말합니다.
百千萬劫難遭隅 백천만겁난조우
백천만겁이 지나도 만나기 어려워라.
여기서 겁은, 어떤 시간의 단위로도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까지를 말합니다.
我今聞見得修持 아금문견득수지
지금 제가 그것을 보고 듣고 수지하여
여기서 수지라는 것은, 갈고 닦아 지킨다는 뜻입니다.
願解如來眞實義 원해여래진실의
여래의 참된 뜻을 알고자 하나이다.
여기서 여래라는 것은,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 온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진리를 찾아 가 봅시다.
지금 여러분과 나는 형체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도 형태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와 같은 형태를 갖거나 또 지키려고 노력을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갖고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처음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차츰 낡아져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물건은 낡고 부서지며, 사람은 늙거나 죽습니다. 여기에 우리 인생의 애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합니다. <왜 세상은 처음 상태 그대로 있지 않고 낡거나 사라져 우리를
괴롭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처음에 아무런 형태가 없는 <무극의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무극의 상태>를 안 사람을 부처라고 합니다. 형태의 세계에서 형태 이전의 무극 상태를 안 사람을 말입니다. 그리고 무극의 상태로부터 우주의 작용에 의해 형체를 가진 사람을 여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래는, 부처가 우리
눈에 보이는 형체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불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이 말을 해석하면, 무릇 존재하는 모든 상相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모든 상이, 상이 아님非相을 안다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상은 언젠간 부서져 흩어지니 그 형상이 진짜 모습이
아님을 안다면 바로 진짜 모습인 여래를 찾으리라. 또, 무릇 있는바 모든 현상相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현상이 진실상이 아닌非相 줄 알면 곧 여래를 찾으리라/라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가 보고 느끼며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무극의 상태에 비하면 언젠간 사라지는 허망한 삶이니 이와 같은 우리의 삶이 진실상이 아닌 줄 알면 곧 근본 상태인 무극을 찾게 되리라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무극의 상태를 터득한 사람을 부처라 하며 무극의 상태에서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을 여래라 합니다.
여래는 곧 무극의 진리를 터득한 상태에서 우주의 법칙에 따라 우리의 세계에 존재하는 부처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진리로부터 진리에 의해 온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 최초의 진리인 무극 상태는 영원히 변함이 없지만 그것은 스스로 작용을 합니다. 단 그것이
작용을 할 때는 반드시 정육각형이라는 틀을 갖추어야만 그 안에서 작용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작용하는 우주의 진리를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태극이라고 했습니다. 태극은 곧 상반되는 두 가지 작용을 동시에
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우주는 텅 빈 무극의 상태지만 그 안에 정육각형 틀이 갖추어지면 그 안에서 작용이 일어나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용은 눈에 보이는 세상뿐만 아니라 스스로 다시 소멸하는 작용도 있어 처음 상태인 무극의 세계로 다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우주는 텅 빈 상태이며
수많은 것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아주 묘한 세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차근차근하게 처음 진리의 상태로 돌아가 봅시다.
우주 최초의 진리 세계는 무극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극의 상태에 육각형이라는 틀이 갖추어지면
그 안에서 태극이라는 작용이 일어납니다. 태극의 작용은 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뻗어나가는 작용과
끌어당기는 작용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림1
즉 우주는 뻗어나가는 작용에 의해 수많은 것들이 창조되며 또 끌어당기는 작용에 의해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무극의 상태로부터 태극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을
여래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무극을 터득하면 부처요, 무극의 세계에서 태극의 작용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면 여래인 것입니다. 이것을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석가는 사라지는 현실세계보다 영원한 무극의 세계를 더 중시한 부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심정이 사라지는 현실세계에 매어 괴로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석가가 말한 부처의 세계는
사실 굳이 설파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모두 그 세계로 돌아갑니다. 단지 부처는 우주의 작용에 의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 가서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자의가 아닌 우주의 작용에
의해 가면 그 자체가 이미 우주지 부처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부처만을 추구하다 보면 그 사람은
우주의 작용과 어긋나 결과적으로는 더 허망한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부처가 되면 허망하지 않게 보람된 인생을 보낼 수 있지만, 끝내 부처가 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인생을 허망하게 낭비한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까운 인생을 허망하게 보내면 안 된다.
<차라리 우주처럼 창조를 통해 인생을 보람차게 살면서 그 근본 상태를 터득하면 된다> 하고 나온 사람이 바로 <미륵불>입니다. 미륵은 부처처럼 무극의 세계를 터득했으나 그 무극의 세계보다 허망하다고 부처가 말한 현실세계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무극과 태극은 같나니, 태극이 곧 무극이라 태극을 알고 무극을 알면 모두가 다 진실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극이 상태라면 태극은 곧 작용인 것입니다.
부처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허망하여 참된 진실이 아니니 그 이전의 참된 세계를 찾아가자>라는
가르침을 폈다면, 미륵은 <참된 세계가 있어 그 세계로부터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니 세상은 온통 참된 것뿐이다. 이처럼 참된 세상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마음껏 누리며 가꾸자>라는 가르침을 펴는 것입니다.
물론 부처의 세계는 무극을 위해 현실을 저버리는 폐단이 있고, 또 미륵의 세계는 무극을 잘 몰라 잘못
시작하면 창조가 아닌 파괴가 일어날 수 있는 폐단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이 바로 참된 무극의 세계를 모르고 일으킨 창조문명입니다. 그래서 과학은 편하고 좋은 점이 있는 반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해롭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사용하는 핸드폰도 편하고 즐길 수 있는 좋은 점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전자파 등으로 우리 몸에 해가 되는 나쁜 점도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미륵은 부처와 다르게 무극 상태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확실하게 여러분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극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다이아몬드 같은 상태라면 태극은 찬란하게 빛나는 무지개 같은
세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의 세상은 바로 미륵불 시대입니다.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우주의 참된 세계에, 육각형이라는 틀이 갖추어지면 그 안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작용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나는 이것을 <아프락사스의 원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작용 중 하나는 끌어당기는 작용이고 또 하나는 뻗어나가는 작용입니다. 그리고 끌어당기는 작용이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상을 여러분 안에 끌어 오면 여러분은 그것을 마음 안에 저장해 놓고 그 저장된 것을 통해 생각을 하며 판단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판단하는 의식작용을 <자의식>이라 합니다.
또 하나의 뻗어나가는 작용은 생각을 하거나 판단은 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뻗어나가고 끌어당기는 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여러분의 몸을 움직이거나 지키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뻗어나가는 작용의 중심을 <영혼>이라 합니다.
사실 생각을 하거나 판단을 하는 의식작용이 없어서 그렇지 우리 인생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은 바로
<자의식>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자의식은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여 할 결심은 하지만 뻗어나가는 힘이
약해 얼마 못가 포기를 하고 맙니다. 그래서 자의식은 인생의 주인이 아닌 것입니다. 피아노를 잘 치거나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은 그것을 읽고 공부하여 습득한 실력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어설프더라도 자꾸 치고 또 쳐 몸에 익혔기 때문에 잘 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복하여 자꾸 하면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영혼에
각인이 되어, 영혼은 그것을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행동하는 자아>를 <영혼>이라 합니다.
물론 무극의 진리를 터득한 사람은, 영혼을 통해 행동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의식은 생각만 할뿐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생 자체가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것입니다. 똑 부러지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혼을 통해 살아야 되겠습니다.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
爾時 世尊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於其城中
이시 세존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어기성중
次第乞已 還至本處
차제걸이 환지본처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이 말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대비구 천이백오십 인과 더불어 사위국 기수급 고독원에 계시었다.
마침 공양 때가 되어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으로 가시어 한 집씩 차례로
걸식을 하시었다.
정사로 돌아오시어 공양을 마치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마련하고 앉으시었다.
얼핏 들으면 뭐 이따위가 경전이냐? 하며 대수롭지 않게 들릴 수 있는 내용입니다.
석가는 매일 거르지 않고 이렇게 걸식을 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석가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석가와 같은 세존이 되었다면 여러분은 매일 이렇게 석가처럼 발우를 들고 성 안에 들어가
이집 저집 구걸을 다닐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제자들을 시켜 먹을 것을 구해오라고 시키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와 그 현상세계를 보고 느끼는 자신의 심정,
즉 자의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무극의 상태를 터득한 성현은 자의식이 아니라 무극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영혼을 통해 삶을 삽니다. 단 영혼은 생각을 하거나 판단은 하지 못하지만 자의식이 원하는 것을 영혼에 각인시키면 그 각인된 것이 현실에 나타나게 할 수는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정한 대로 된다>고 합니다.
석가는 영혼에 <자신이 먹을 것은 자신이 직접 구걸해 먹는다>고 각인 시킨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세상을 보고 필요한 것을 따라 가며 살지만,
성현은 이렇게 스스로 정한 대로 세상에 나타나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하지 마시고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마음에 정하도록 하십시오.
<나는 결코 내가 책임지고 있는 나의 식구 모두가 돈이 없어 핍박당하는 꼴을 보지 않겠다>라고
정한 마음이 곧 그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삶을 <영혼으로 사는 삶>이라 하는 것입니다.
자의식은 오늘 정한 결심이 3일을 가지 못하고 흐지부지 하지만,
영혼은 한번 정하면 이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결의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정한 마음은 <용서할 수 없는 나>가 되어 찬란하게 이 세상에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미륵이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첫 번째 가르침도 바로 이와 같은 <정한 대로 된다>인 것입니다.
비가 오나 태풍이 부나 한결같이 발우를 들고 먹을 것을 찾아 떠나는 세존,
그는 영혼으로 사는 삶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한결같이 살았던 것입니다.
젊은 시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걱정하지 말고
먼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정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꼭 그렇게 되기 위해 영혼에 각인을 시키십시오.
그렇게 살지 못하면 스스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분명하면
그것은 영혼에 각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은 각인된 대로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영혼의 힘은 다이아몬드처럼 결코 변하거나 흩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할까를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될까를 미리 정하도록 하십시오.
미래는 반드시 정한 대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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