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씨불 시대의 삶 】 2017. 8. 23.(수)
지금부터 약2500년 전 네팔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는 크면서 사람이 늙고 병들며 죽고 또 태어나는 원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로 하여금 벌어지는 근심과 걱정을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자의식>의 걱정
모두를 말입니다. 이것을 번뇌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35세가 되었을 때 번뇌도 일종의 에너지가
일으키는 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의 근원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때문에 이 아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는 날까지 이 에너지의 근원을 찾으라고 가르쳤습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 즉 번뇌는 그 근원상태를 찾으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스크린에 나타난 영상이 빛이라는 근원 상태 때문에 생기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근원 상태를 찾아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해탈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열반>이라고 합니다. 열반은 곧 마음의 평화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나이를 먹으며 자신의 가르침이 어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에너지에 의해 자의식의 번뇌가 생겼다면
그 에너지가 번뇌가 아닌 다른 것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든 것입니다. 번뇌를 일으키는 자의식이 에너지에 의해 생긴 것이라면 이 에너지를 통해 원하는 것 모두를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2500년 후쯤 누군가가 바로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것 모두를 이룰 수 있는 가르침을 펴는 자가
나타나면 너희들은 그때 나의 가르침을 버리고 그를 따르라>하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근원 에너지 스스로가 일으키는 작용을 통해 세상 만물을 창조하는 가르침을 펴는 자를
<자씨불慈氏佛>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慈>는 에너지 스스로가 일으키는 작용이란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자씨불을 <미륵>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예언한 그 아이의 이름은 바로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ta입니다. 우리 동양 사람들은 그를 <석가>라고 부릅니다.
자의식에서 바라본 세상은 모두 무상無常합니다. 여기서 무상이라는 말은 <실체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 뿐 실체가 아니다>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있는 것 같지만 언젠간 변해서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덧없다>는 의미로 무상이라 합니다. 그러나 근본 에너지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바르게 보입니다.
근본 에너지는 곧 실체이며 세상은 실체를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 옳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실지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근본 에너지 상태를 <영혼>이라고 합니다.
옛날의 석가는 바로 이 영혼의 작용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는 훗날 이와 같은 <영혼의 작용>을
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따르라고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석가의 가르침을 따르면 세상은 모두
무상하여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자의식의 세상은 근본 에너지를 위해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진화를
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근본 에너지인 본질 에너지의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근본 에너지 상태인 영혼을 바로 쓰면 자의식이 바라보는 무상한 세상을 빛나는 진리로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석가는 어렴풋이 그와 같은 세상을 눈치 채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의식의 <무상>이 가난을
만든다면 영혼의 <창조>는 풍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세상이 언젠간 없어지는 무상이라면,
에너지의 본질인 근본 에너지의 세계는 영원히 존재하는 진실입니다.
그래서 석가는 무상한 자의식을 떠나 진실된 에너지를 찾으라고 했다면, 자씨불은 진실된 에너지를 통해
진실된 세상을 만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부터 많은 영적 능력자들이 이와 같은 자씨불의 모습을 미리 보고 다음과 같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사진 참고 그들이 본 자씨불의 모습은 저렇게 모자를 쓰고 맨발로 다니는 형상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마음은 곧 우주의 근본 에너지와 같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근본 에너지를 에너지의 본질, 혹은 본질 에너지라고 합니다. 때문에 불가에서는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 에너지를 터득하는 것이 곧 부처인 것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바로 이와 같은 근본 에너지에 의해 창조된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간 부서져 다시 근본 에너지로 돌아가겠지요. 그래서 세상은 수없이 많은 것들이 생겼다
없어지지만 그렇다고 결코 우주가 더 커지거나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존재하는 에너지와 작용하는 파동은 결국 같은 한 몸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상반된 묘한 관계를 <아프락사스의 원리>라고 합니다.
변하는 세상과 존재하는 세계는 같은 하나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존재>와 <작용>은 서로 다른 둘이 아니라 사실은 같은 한 몸인 것입니다.
세상 만물은 뻗어나가는 작용과 끌어당기는 작용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끌어당기는 작용이 작은 입자들을 끌어 모으면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는 물체가 되고
뻗어나가는 작용이 그 입자들을 흩트려 놓으면 그 물체는 우리 눈에서 사라져 본질로 돌아갑니다.
우리 마음 또한 끌어당기는 기운이 세상 모든 것을 끌어 오면 그것은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자의식>이 되고,
뻗어나가는 기운인 <영혼>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면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의식이 바라본 세상은 덧없이 무상하고, 영혼이 창조한 세상은 빛나고 값진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이렇게 영혼이 원하는 대로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씨불이 말하는 진실된 세계입니다.
자의식은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자의식이 욕심을 부려 세상을 탐하면 자의식은
그것을 끌어오려고 합니다. 이렇게 자의식이 끌어오려고 하는 욕심을 탐욕貪이라고 합니다.
또 자의식이 자기와 맞지 않는 경계를 만나 트러블이 생기면 그것을 진瞋이라 합니다.
일종의 <진노>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의식은 지난 기억 속에서 작용을 하기 때문에 현실을 바로 볼 수 없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냥 자기 식으로 판단합니다. 심성이 좋은 사람은 좋게 바라보고
심성이 약한 사람은 무조건 양보를 합니다. 이와 같은
자의식의 어리석음을 치癡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의식의 세 가지 작용 <탐진치貪瞋癡>입니다.
영혼은 뻗어나가는 기운이기 때문에 자의식처럼 있는 것을 탐하지 않습니다.
보고 좋으면 그 좋은 것을 영혼에 각인시켜 현실 세계에 나타나게 합니다.
그리고 자의식은 끌어당기는 기운에 의해 생긴 <자기라는 경계>가 분명하지만 영혼은 뻗어나가는
우주심이기 때문에 <자기라는 경계>가 없어 부딪칠 트러블도 없습니다. 또 자의식이 과거를 통해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영혼은
기감을 통해 있는 현실을 바로 보기 때문에 어리석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석가처럼 <탐진치>를 벗어나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석가의 가르침을 법法이라 합니다. 일종의 원칙과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석가는 죽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할 것이지,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또 내가 죽으면
<교주敎主의 말은 끝났다. 그렇다고 교주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설한 교법敎法과 계율이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자의식이 이와 같은 법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길>이 아니라 <구속>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의식 속에 들어 있는
석가의 법이 잣대가 되어 맞으면 받아들이고 다르면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씨불은 법이 없이 좋으면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좋으면 받아들이고 필요하지 않으면 안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 말은 자신의 영혼이 관심이 있으면 받아들이고 관심이 없으면 모른 척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의식처럼 법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주체가 되어 필요하면 수용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해하고 납득한다는 자의식 자체가 이미 잘못된 계산입니다.
그래서 자씨불은 수용이냐 아니냐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노인네들은 수용성이 적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는 세계가 새로운 것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좋으면 무조건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손으로 조몰락거리며 만지다가 결국은 터득을 합니다. 노인들이 컴퓨터를 잘 못하고,
어린애들이 능숙하게 잘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석가의 <법>이 구속이라면 자씨불의 <수용>은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법이 구속인 이유는 자의식이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수용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까닭은 영혼이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자의식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아지만 영혼은 행동하고 움직이는 자아입니다.
세상살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석가처럼 법을 내세워 골라내면 가질 것이 없습니다.
자씨불처럼 먼저 수용하고 그렇게 수용한 상태에서 가려내야 합니다. 이렇게 먼저 수용한 상태라야
수용한 주체, 즉 영혼이 그것을 위험한 것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 살려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고 사는 문제는 사실 병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이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유쾌하게 살면 있는 병도 없어지지만 병든 사람을 보며 병을 걱정하면
그 걱정이 자신을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병이 자신을 죽게 만들고, 즐거운 마음이 자신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자의식은 탐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싸움이 그치질 않습니다.
이렇게 탐하며 사는 세상 문명을 <입자문명>이라 합니다. 한 마디로 눈에 보이면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세계는 이렇게 입자문명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자씨불의 세상은 <파동문명>입니다.때문에 뻗어나가는 파동을 통해 필요한 것을 창조하면 됩니다.
원하는 형체를 파동을 통해 내보내면 그 파동과 같은 입자가 공명을 통해 현실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진 참고
지금 저 실로폰 위에 녹차잎이 있는 부위의 음을 파동을 통해 내보내면
녹차잎은 공명을 통해 진동하여 떨어져 버립니다.
이렇게 파동을 통해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을 『싸이파워Psy-Power』라고 합니다.
입자문명 시대에는 『싸이파워』를 잘 몰라 원하는 것을 <신>이나 <부처> 혹은 <자연>에 빌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비록 석가가 이와 같은 기도를 하지 말라고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자의식들은 불공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도도 『싸이파워』를 모르고 잘못하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현실이 되도록 그 메커니즘mechanism을 밝혀 만든 것이 바로 『싸이파워』입니다.
『싸이파워』는 천지를 움직이는 <천지수단>인 것입니다.
입자문명 시대에는 있는 것을 빼앗아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파동문명 시대에는 원하는 것을 영혼에 각인만 시키면 그 형체가 우주에 퍼져나가 그와 같은 형태를 세상에 나타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씨불이 말하는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법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씨불의 능력을 『싸이파워』라고 합니다.
『싸이파워』는 <영혼의 힘> 즉 뻗어나가는 본질 에너지를 통해 영혼에 각인된 형체를 세상에 창조하는 <우주의 힘>입니다.
우리 인간은 애석하게도 돌아가는 현실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심성을 통해 있는 현실을 해석하려 합니다.
그래서 틀리는 정보도 계속 주입하면 그것을 진짜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의식의 <허虛>이고 <미망迷妄>입니다.
때문에 석가는 세상을 <무상>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잘 되고 안 되는 것은 자의식이 방해를 하느냐 아니면 영혼이 수용을 하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자신이 없고 잘 안 되는 이유는 자의식이 훼방을 놓기 때문입니다. 사실 영혼은 뻗어나가는 우주심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차이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백만 원과 일억 원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만 원은 벌 것 같은데 일억 원은 뭔가 부담스럽다면 그것은 바로 자의식 때문입니다.
자의식이 판단하기에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이파워』를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의식의 훼방을 물리쳐야 합니다. 다각도로 생각하고 또
『싸이파워』를 잘하는 사람 옆에서 직접 체험을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의식의 훼방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의식의 훼방 없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신앙信仰>이라 합니다.
신앙은 영혼에 각인된 형체를 자의식의 방해 없이 우주가 작용하여 원하는 대로 모두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여러분이 원하면 우주의 메커니즘mechanism이 스스로 작동하여 이루어지게 하는 원리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신앙>입니다.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될 수 있다는 확신> 즉 <신앙>이 생기면 여러분은 보다 크게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용하지도 않는 것을 무리하게 많이 가지면 그것은 소중하다는 마음의 끈과 사랑하는 영혼의 힘이 작동하지 않아
언젠간 다시 <무無>의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니 원하는 것은 영혼에
각인시켜 현실화 시키고 그렇게 현실에 탄생한 모든 것은 항상 내 몸처럼 소중하게 사랑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의 끈이 『싸이파워』의 가장 큰 비밀입니다.
마음이 지켜야 존재가 빛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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