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완전한 깨달음 그 이후의 삶> 이란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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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 전에
사람은 누구나 묻습니다. “제가 깨닫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좌선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명상을 해야 합니까? 깨달음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대해서 석가모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네가 진정 깨닫기를 원한다면 너 자신을 벗어나라.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사람들은 깨닫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희생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깨달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일을 할 때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고 시작하는 일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이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되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의도적으로 기울이는 노력은, 명상이든 좌선이든 깨달음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깨닫기 위해서는 영혼의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영혼이 그 속에 담겨야 합니다. 깨달음의 영혼은 마음의 아픔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아기를 낳는 순간, 여자는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거의 죽을 것 같은 아픔을 통해서 생명은 탄생됩니다. 그 아픔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어느 한 순간, 아기는 탄생되는 것입니다. 아기를 낳기 위해 일부러 노력한다고 아기가 잘 낳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기를 낳는 연습을 한다고 아기를 쉽게 낳는 것도 아닙니다. 아기 낳는 연습을 통해 아기를 낳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깨달음도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연습을 하면 깨달아지는 줄 알고 좌선과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 속에서, 자신의 한계 속에서 벌어지는 아픔을 통해서 그 아픔 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아픔 위에 덩그러니 솟아오른 영혼, 그것이 곧 깨달음입니다.
“내 곁을 떠난 사랑 때문에 못 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파묻혀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팔이 하나 없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몸에 파묻혀 사는 사람입니다.
“나는 돈이 없기 때문에 불행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생활에 파묻혀 사는 사람입니다.
깨달음의 삶은 생활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깨달음의 삶은 몸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깨달음의 삶은 마음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어디서든지 영혼만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면, 그 모든 아픔은 자기의 밝은 영혼을 통해서 얼마든지 기쁨과 보람을 창조해낼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삶은 그 어느 것의 종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재산이 불타 없어졌다고 모든 의욕을 잃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린다면, 그것은 깨달음의 영혼이 아닙니다.
영혼만 분명하다면 몸의 아픔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영혼만 분명해진다면 마음의 아픔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습니다. 영혼만 분명하다면 생활의 고달픔도 거뜬히 넘어설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삶은 생활 때문에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고, 몸 때문에 영혼이 처절해지지 않으며, 마음의 아픔 때문에 영혼이 추해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만물은 자기 자신과 똑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만물에 짓눌려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만물에 빠져 살아도 안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만물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갈등이 생기고, 생활이 무질서해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영혼은 그것에 빠지지 않습니다.
깨달음의 영혼은 마음의 주인입니다.
깨달음의 영혼은 몸의 주인입니다.
깨달음의 영혼은 만물의 주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삶은 마음을 통한 기쁨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깨달음의 삶은 몸을 통한 즐거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깨달음의 삶은 재물을 얻는 만족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 얻는 만족이나 기쁨, 그것은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마음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이 그 마음을 통해 얻은 만족이나 기쁨, 그것은 슬픈 자기 위안입니다.
깨달음의 삶은 진정 눈물 없이는 느낄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의 길입니다. 깨달음의 삶은, 마음의 기쁨을 찾지 않고 마음의 기쁨마저 벗어버린 오롯한 영혼이 가장 찬란하게 가꾸는 행복의 절정입니다. 깨달음의 삶은 뜨거운 사랑을 통해 생활의 벽을 넘어선 맑은 영혼이 가장 편안하게 만들어내는 평화의 절정입니다.
그 평화와 행복을 얻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에게 만물은 헤치기 어려운 장애가 아니라, 삶을 살찌우는 소중한 재산이 될 것이며, 우리가 가진 소유는 자신을 얽어매는 짐이 아니라, 모두의 보람을 위해 쓰여지는 여유가 될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되었을 때, 지금까지 생각에 헤아림 당하고, 욕심에 치이고, 생활에 쫓기던 삶은 바뀌어, 주어진 생각과 욕심과 생활을 주재하는 창조의 결실로 맺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현실은 곧 자연과 더불어 누리는 평화와 사랑의 낙원이 될 것입니다.
이 강의는 바로 그 낙원에 이르는 가장 소중한 사랑의 인연입니다. 그 인연을 저버리지 않고, 인연의 결실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모든 만물과 또 다른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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